스웨덴 최초 차량 폭탄 테러, 100년 전 '파이퍼스카 폭발' 사건 재조명

Mitti 보도에 따르면, 100년 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최초의 차량 폭탄 테러 사건인 '파이퍼스카 폭발'이 최근 과학 라디오 팟캐스트 시리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.

사건 개요: 최초의 차량 폭탄 테러

1926년 3월 12일 새벽 3시경, 스톡홀름 쿵스홀멘(Kungsholmen) 지역에서 택시 기사 브로르 스트롬베리(Bror Strömberg)가 운전하던 뷰익(Buick) 택시에 6kg의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되었습니다. 이 폭발물은 차량의 트렁크에 부착되었으며, 90초 후 폭발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. 이 사건으로 인해 승객이었던 식스텐 플라이보리(Sixten Flyborg) 씨는 즉시 사망했으며, 운전기사는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.

초기 수사와 용의자

사건 초기 경찰은 가스 탱크 폭발로 추정했으나, 곧 폭탄 테러로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. 현장에서 발견된 교환권(växelsedel)은 에리크 폰 아르빈(Erik von Arbin) 명의로 되어 있었고, 그는 알렉산더 크뤼거(Alexander Kreüger)와 함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.

범행 동기: 사업 실패와 사랑의 비극

폰 아르빈과 플라이보리는 차 수입 사업을 함께 운영했으며, 크뤼거는 해당 회사에 고용되어 있었습니다. 당시 스톡홀름은 시카고와 같은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며, 밤 문화와 범죄가 성행했습니다. 초기에는 사업 부진으로 인한 재정난이 범행 동기로 거론되었습니다. 플라이보리의 생명 보험금을 통해 회사의 파산을 막고 폰 아르빈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는 분석입니다.

하지만 역사가 마츠 하옌(Mats Hayen)은 플라이보리와 헨리에타 잉발드센(Henrietta Ingvaldsen)의 불륜 관계에 주목하며 또 다른 동기를 제시했습니다. 잉발드센은 '마담 X'로 불리며 밀주 밀수와 매춘 알선에 연루된 인물로, 크뤼거 역시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.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당시 상류층 사건이라는 점과 함께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.

범행 시도와 판결

크뤼거는 사건 발생 전에도 플라이보리의 집에 침입해 코카인을 음료에 타거나, 플라이보리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등 여러 차례 살해를 시도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. 결국 두 사람은 스웨덴 최초의 차량 폭탄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.

결국 폰 아르빈과 크뤼거는 범행을 자백하고 '플라이보리 폭발' 또는 '파이퍼스카 폭발'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종신 노동형과 막대한 손해 배상금을 선고받았습니다. 두 사람은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사면되었으며, 이후 별다른 범죄 없이 살아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.

사건 이후의 삶

사면 후 수년이 지나, 요하네스 소방대장 안드레아스 그릴(Andreas Grill)과 쿵스홀멘 경찰서장이 쿵스홀멘의 한 석유 저장고를 점검하던 중, 장발의 한 남성을 관리인으로 만났습니다. 그는 바로 에리크 폰 아르빈이었습니다. 그릴 서장이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하며 악수를 건네자, 아르빈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고 전해집니다. 이는 오랜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그에게 베푼 작은 친절의 제스처가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.

원문: Mitti

본 기사는 Mitti 보도를 바탕으로 코다리가 재구성한 뉴스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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